샌프란시스코 한인 박물관을 소개 합니다.

<북가주 샌프란시스코와 인근 지역>

1769년 스페인 탐험가에 의해 발견된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 중의 하나로, 미서부 지역의 도시 중에서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다음으로 큰 도시입니다.

 

스페인에 의해 1776년 요새(Presidio)와 선교본부(Mission San Francisco de Asis)가 세워졌고,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농장들이 들어서고 서부개척에 나선 미국인들이 모여들면서 예바 부에나(Yerba Buena)라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미군이 멕시코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1847년 샌프란시스코로 개명되었으며, 1848년 새크라멘토(Sacramento) 근교에서 금이 발견되자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와 골드러시(Gold Rush, 상업적 가치가 있는 금이 발견된 지역에 노동자들이 대거 이주하였던 현상)를 이루었습니다.

 

1906년 지진으로 도시가 대파되었으나 한 은행가의 복구비 지원으로 다시 미관을 찾게 되었습니다. 대륙횡단 철도와 파나마 운하 건설로 산업이 발전하고 타 지역 농부들이 날씨가 좋은 이 곳으로 다시 몰려들었으며 1936년 베이 브리지(Bay Bridge)와 1937년 금문교(Golden Gate Bridge) 개통으로 금융, 제조업 등이 발달해 미 서부의 중심도시가 되었습니다.

 

미주 한인이 샌프란시스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02년 12월 22일 인천 제물포항에서 첫 이민자 121명이 하와이 이민선 ‘갤릭호(USS Gaelic)’에 탑승하고부터입니다.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6조에 ‘조선 백성은 미국 어느 곳이나 왕래하고 거류하며, 토지와 가옥을 매매하고 건축할 수 있으며 법률에 적당한 영업은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조항과, 1900년 6월 하와이가 미국령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미주 이민은 주한미국공사 호레스 알렌(Horace N. Allen)이 고종에게 건의해 이뤄진 일이었는데, 제사의 도리를 지켜야 하는 유교적 전통과, 언제 다시 고국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우려 때문에 지원자가 많지 않았지만, 알렌 공사의 선교사 친구인 제물포 용동교회(現 내리교회) 존스 목사(Pastor G. H. Jones)의 협조 덕분에 지원자의 절반이 그 교회 교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것은 훗날 미주 한인사회가 교회 중심의 사회가 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1903년 1월 13일, 경유지 일본에서 신체검사 후 탈락한 20명을 제외한 101명이 하와이에 도착했고, 1905년 8월 공식이민이 중단될 때까지 7300여명이 미주에 정착했습니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개척의 붐으로 다양한 일거리가 제공되었고, 높은 급료와 화창한 날씨는 하와이 한인들의 본토 이주를 북돋았습니다. 마침 1903년 유니언 퍼시픽과 태평양 철도회사가 노동자 2만 명을 모집하자 한인 대리인이 모집에 나섰고, 천 명이 넘는 한인들이 1904년부터 1907년까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습니다.

 

이렇듯 미국 본토로 들어오는 관문인 샌프란시스코는 미주 한인 이민 역사의 중심이 되었던 곳으로, 이민 선조들의 희생의 숨결과 발자취가 살아있는 곳입니다. 샌프란시스코는 1883년 한인 외교 사절단 보빙사(報聘使)가 미국에 들어와 가장 먼저 도착한 곳으로, 그들이 머물렀던 팰리스 호텔(Palace Hotel)이 있고,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된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의거가 일어났던 장소인 페리 빌딩이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또한 나라를 잃은 망명자들의 정부역할을 한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와, 해방 후에 이민자에게 정보와 지식을 제공한 신한민보(新韓民報)가 만들어진 곳이며,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민단체인 흥사단(興士團)이 창단된 곳입니다.

 

샌프란시스코와 근교의 많은 한인들은 훌륭한 지도자들의 선도를 받아 학교 설립, 단체 유지, 외교협회 대표자 후원에 열성을 다하다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중가주 리들리, 다뉴바 지역>

미국 서부지역에 위치한 또 하나의 한인지역사회 리들리 (Reedley), 다뉴바 (Dinuba), 델라노 (Delano) 등의 도시는 캘리포니아의 중가주에 위치한 곡창지대입니다. 1903년 1월 13일 하와이에 첫 발을 내디딘 한인 이민 선조들은 노동계약이 끝난 1905년 5월부터 샌프란시스코를 비롯, 서부지역으로 이주하였는데 그 중 일부가 과일, 야채, 곡물, 면화 등 농업생산지로 유명한 중가주에 ‘한인타운’을 형성하였습니다.

이곳에서 한인들은 처음에는 철도 및 도로공사 혹은 농장의 노동자로 근무하였으나 점차 대규모 과수원을 구입하거나 임차해서 경작하였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과일농사 및 장사를 통해 많은 수익을 올렸는데, 대표적인 예로 김호, 김형순의 ‘김형제 상회’(Kim Brothers Company)와 송철의 과수원(Songs Packing) 회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중가주에 정착한 한인들은 농장과 교회를 중심으로 한인의 단결을 도모했으며, 1914년 5월 다뉴바에 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지방회를 설립한 이래 독립운동에도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다뉴바 한인장로교회에서 1920년부터 매년 3.1절 기념식을 거행하고 시의 메인스트리트에서 기념 퍼레이드를 갖기도 했으며, 1937년에 중가주 한인교회연합으로 3.1절 경축식을 성대히 치른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중가주 지역에는 한인 공동묘지가 곳곳에 있습니다.

설립목적

샌프란시스코 한인박물관의 설립목적은 SF/Bay Area를 중심으로 북미에 산재해 있는 미주 이민역사 물품, 사진, 그림, 책자, 구술, e-file 등을 수집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그들을 보관하며 전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계 교포들뿐만 아니라 일반 미국사회에 한국문화와 이민사의 발자취를 알리는데 뜻을 두며 필요에 따라 그에 따르는 교육활동과 문화활동을 실시하고자 합니다.

샌프란시스코는 한국과 첫 교류의 근원지였고 여러 곳에 역사적 흔적을 남긴 곳이나 이것을 아는 분들이 많지를 않습니다. 우리 후세들이 미국 땅에서 정체성을 갖고 자랑스럽게 살아갈 수 있도록 소중한 역사적 자료를 전수하고자 하는 박물관의 취지에 동참하셔서 여러분들이 소장하고 있는 물품 등을 기증해주시고 구술 작업에 동참해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위원 및 자문위원 

정은경(위원장), 손수락, 유형섭, 클에어유, 이정현, 임미영, 정인경, 김경련, 존허, 이종혁, 그린장, 김영숙, 윤지해, 김동열, 김판겸

 

지금까지 해온 일

역사 및 문화 강연

  • “주 한인 이민의 역사,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해야 할 것인가” (홍선표, 2014.6.3)
  • “이민 선조들의 업적과 후손들의 계승과 발전” (김영란, 2014.7.10)
  • “한인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보여줄 박물관” (Laura Nelson, 2015.6.20)
  • “민족 박물관의 필요와 중요성” (이정희, 2015.6.20)
  • “샌프란시스코 한인박물관의 방향” (클레어유, 2015.8.8)
  • “기억과 역사” (권영민, 2016.5.21)
  • “초기 이민 인물 만나기 시리즈” (이연택, 2016.11.12)

전시: 지역 화가들이 기증한 미술품 및 조각품과 한국학교 학생들의 미주 이민 관련 미술 작품들로 전시 (2015.6.20)

출판: <한국인의 예술과 생활 I> (2016.5.27)

 

현재 진행중인 사업

영상 인터뷰

우리들의-발자취-interviews

‘초기 이민 인물 만나기 시리즈’

초기 이민 인물 만나기-lecture 

 

출판

<선조의 삶과 꿈 I> (2017년 12월 예정)

 

앞으로의 계획

  • 이민사 자료 수집 계속
  • 초기 이민 인물 만나기 시리즈  계속
  • 영상 인터뷰 계속
  • 이민사 자료 전시, 미술 전시회, 음악회, 다양한 분야의 강연과 담화
  • 한국 역사 및 문화 교육 초빙 강의
  • 박물관 운영 건물을 위한 모금 운동